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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서 일하며48

황토묵막집(노을고개) 오랜만에 안동 나들이. 시내에서 하루 보내고 다음날 아침 해장차 시내를 벗어났다. 안동 사는 시인이 노을고개라 이름 붙인 곳에 있는 안동 와룡의 황토방묵집. 안동 영주 사람들 좋아하는 배추전을 기본으로 감자전, 묵, 칼국수 등을 판다. 매주나 고추가루처럼 직접 만든 걸 팔기도 한다. 시인은 노을 질 때 이 곳이 좋다는데 난 주로 점심 전후로 가 그 경관을 보질 못했다. 2014. 1. 28.
다시 찾은 만휴정(晩休亭) 오랜만에 안동에 왔으나 사람이 오랜만이면 역시 낯이 설어지는 모양이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든 업무차 온 사업담당이랑 저녁이라도 먹었을 것 같은데 낯설으니 밥 한 그릇 사는 것도 얻어 먹는 것도 불편하다. 다른 이와 오후 약속을 잡고 같이 온 직원들 서울 보내니 짬이 생긴다. 이럴 땐 불쑥 가는 게 좋다. 며칠 전부터 안동 가면 가봐야히 마음 속에 두고 있던 만휴정을 찾았다. 몇 년만인지... 벌써 5-6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안동에서 가장 멋진 정자 중 하나 만휴정. 지붕을 덮은 천막을 보니 공사중이고 오르는 길 계곡에 여전히 물이 좋고 계곡가엔 개나리 흰병꽃 진달래 꽃들도 많다. 위쪽 계곡에는 중년의 남녀가 오붓이 소풍을 즐기는데 나중에 사진 찍으며 인사를 주고 받으니 안동녀와 경주남의 로맨스 같다... 2013. 5. 14.
안동역 옆 동부동 5층 전탑 안동 시내에 있는데 의외로 잘 가보지 못하는 동부동 5층 전탑. 신라시대 것이므로 당연히 보물. 제56호라고. 높이 8.35m. 보물 제56호. 후세의 보수로 인하여 기단부가 상당히 변형된 듯하나, 현재는 높이 약 42㎝의 화강석 3단을 쌓아 기단을 삼았다. 탑신부(塔身部)부터는 27.5×12.5㎝에 두께 6㎝의 무문전(無文塼:문양이 없는 벽돌)을 사용하였으며, 옥신부(屋身部)에는 우주형(隅柱形)의 표현이 없고 옥개부(屋蓋部)의 처마 너비는 좁아졌다. 각 층에 감실(龕室)이 개설되었는데, 초층 남면에는 높이 47㎝, 너비 55㎝의 테두리를 화강석으로 만들어 감실을 삼았고, 2층의 4면과 3층의 남면에는 높이가 전재(塼材) 2매 두께인 형식적인 감실이 개설되었는데, 특히 2층 남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 2012. 3. 14.
권정생 선생 임시 전시관에서 2012. 3. 13.
예천 삼강주막 안동에서 문경 쪽으로 가다보면 문경 산양교 직전에서 삼강주막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산양면사무소가 있는 동네를 지나 철길을 지나 59번 도로를 타고 10여 분 가면 삼강마을 속 삼강주막이 나온다. 예천에서 의욕적으로 만든 주막인데 그 간 가본다 가본다 못 가더니 2009년 12월에야 비로소 가본다. 어딜 다니려면 역시 혼자가 좋다. 몸이 가벼우니 움직이기도 좋다. 마을이 첫눈에 정갈하게 꾸며놓은 것이 최근에 단장한 듯 싶다. 민속체험도 할 수 있고 여러 문화체험이 있는 듯한데 마을은 다음을 기약하고 주막만 잠시 들렀다. 어째서 삼강일까? 유래 정도는 알고 가야 보람찬 하루다. 동쪽에서 낙동강, 동북에서 내성천, 서북에서 금성천(산양천) 셋이 만나는 길이라 그렇단다. 호~ 대단하군. 물이 셋이나 만나다니... 2009. 12. 17.
2009년 가을 저녁 봉정사 2009년 11월 봉정사를 다시 찾았다. 가을 국화 필 때 한 번 가보라 하더니 다 지나고 흔적만 남은 11월 중순에 봉정사를 다시 찾았다. 오후 5시가 다 되어가고 절 입구 줄지어 선 국화차 부스들이 철수준비를 하고 있다. 천등산봉정사(天燈山鳳停寺) 일주문을 지나 법의 세계로 들어가자. 일주문을 지났으나 아직 절의 진짜 입구를 지나지는 않았다. 만세루 계단이 몇 개더냐... 무상한 사람들이 이 계단을 밟고 그리던 세계로 오른다. 봉정사 벽은 아무렇게나 생긴 크고 작은 돌들을 어울리게 하여 쌓았다. 먼 옛날 사람들은 제 각각의 돌들을 주워 이 담을 만들며 무상한 삶의 한결같음을 빌었을까... 만세루 밑에서 허리 숙여 지나다 위를 보니 또 계단이다. 대웅전 편액이 선명하다. 계단 전체 숫자가 108개일까?.. 2009. 11. 13.
2009년 이른 봄 다시 찾은 청량산 올해 초 안동에 갈 일이 있어 볼 일 보고 청량산 입구에서 동행한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헤어짐. 산 입구까지 왔는데 그냥 가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등산화 갈아신고 바지 갈아입고 오른다. 늦겨울인지 초봄인지 다행히 날이 쌀쌀하지 않다. 이번에 오르면 몇 번째인가, 네 번째? 입석 있는 곳에서 출발해서 응진전, 옹명수, 어풍대, 김생굴, 김생폭포, 폭포 뒤 조금 오르다가 오후 약속이 있어 종주 포기하고 다시 어풍대, 청량정사, 청량사, 산학정이 그날 지난 곳들이다. 새로 생긴 청량산 일주문 쪽 길을 지나 오르면 이렇게 입석이 있다. 그 옆 길로 오른다. 이리갈까 저리갈까, 여기서 바로 청량사 가기엔 발품이 아깝다. 응진전을 향해 오른다. 응진전 옆 무위당(無爲堂). 무위는 노장의 말인데.. 2009. 4. 23.
162년만에 다시 여는 고산강회(高山講會) 2008년 10월 11일(토) 안동 남후에 있는 고산서원에서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름하여 2008 인문주간 162년만에 다시 여는 고산강회(高山講會)입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주최, 계망대학 주관, 한국국학진흥원 박경환 박사 진행으로 이루어진 행사입니다. 2008년 봄 간재종택 음악회에 이어 안동의 고택(자연, 과거 또는 고건축)과 현재 삶(문학, 예술, 공부, 현재)의 소통을 추구한 두 번째 행사인 셈입니다. 봄이나 가을 밤, 안동의 종택이나 고산서원같이 고즈넉한 곳에서 음악도 듣고, 소리도 듣고, 춤도 보고, 시도 듣습니다. 면면이 고수들이고 추구하는 정신세계의 높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옛 선비들처럼 자유로운 정신을 날립니다. 선대 어른들도 이렇게 사셨을 겁니다. 아마도 .. 2009. 1. 5.
의성 수정사 수정사(水淨寺)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비봉산(飛鳳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는 수량사(水量寺)라고 나와 있으나,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가람고 伽藍考≫에는 ‘지금은 수정사라고 부른다’고 나와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에 유정(惟政)이 머물면서 금성산(金城山)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퇴했다. 절의 규모가 컸으나 1835년(헌종 1) 큰 불로 대광전만 남기고 모두 탔다. 그 뒤 전홍(展鴻)이 옛터 위쪽 지금의 자리에 중창하였다. 1965년 이래 6년 동안 월산(月山)이 중수하여 요사.. 2008.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