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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서 일하며

2009년 이른 봄 다시 찾은 청량산

by 무소뿔 2009. 4. 23.
올해 초 안동에 갈 일이 있어 볼 일 보고 청량산 입구에서 동행한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헤어짐. 산 입구까지 왔는데 그냥 가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등산화 갈아신고 바지 갈아입고 오른다. 늦겨울인지 초봄인지 다행히 날이 쌀쌀하지 않다. 이번에 오르면 몇 번째인가, 네 번째?

입석 있는 곳에서 출발해서 응진전, 옹명수, 어풍대, 김생굴, 김생폭포, 폭포 뒤 조금 오르다가 오후 약속이 있어 종주 포기하고 다시 어풍대, 청량정사, 청량사, 산학정이 그날 지난 곳들이다.

새로 생긴 청량산 일주문 쪽 길을 지나 오르면 이렇게 입석이 있다. 그 옆 길로 오른다.

이리갈까 저리갈까, 여기서 바로 청량사 가기엔 발품이 아깝다. 응진전을 향해 오른다.

응진전 옆 무위당(無爲堂). 무위는 노장의 말인데, 산에 오른 사람들이 할 일들이 많이 보였나, 만든 사람의 충고라 생각하자. 이렇게 새집을 짓고 칠을 하려면 돈이 제법 들 터인데, 요즘 청량사 에서 이 정도 일이야 작은 일이겠지.

무위의 궁극은 부재?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도사.

응진불을 모시는 응진전(應眞殿). 진리를 깨우쳤다 하여 응진(應眞)이다. 응진불은  석가모니나 그의 가르침으로 깨우친 제자를 말한다. 석가 당시 그를 따르고 깨우침을 얻은 아라한 제자들이 그들일듯. 빼꼼 밖을 내다보는 사진 속 아라한이 어색하지 않은가? 여러 아라한 중에는 저렇게 세상에 관심이 있는 아라한도 있었을 것이다. 알고보니 저 모습이 더 자연스럽다.

응진전 담에서 응진전 마당과 무위당을 향해.

응진전 지나 다시 청량사 쪽으로 내려오다 바라본 청량산 입구에서부터 뱀처럼 굽은 길. 지나온 길은 사는 게 그렇듯 추억이 된다.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초목이 푸르지 않아도 이쁘다.
절 입구 청량사 안내도.


총명수(聰明水)
금탑봉(金塔峰) 중층(中層)에는 신라 말 대문장가로 알려진 최치원(857~?)에 관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와 관련한 유적으로는 치원암(致遠庵), 총명수(聰明水), 풍혈대(風穴臺)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총명수는 최치원이 마신 뒤 더욱 총명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길 절벽이 상하로 우뚝 솟은 곳에서 물이 일정하게 솟아나는데, 가뭄이나 장마에 상관없이 그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이 물을 마시면 지혜와 총명이 충만해진다고 하여 예로부터 과거 준비를 하던 선비들은 물론 경향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효험을 맛보았다고 한다. 총명수 바로 옆은 최이춴의 이름을 딴 치원암이 있던 곳이다.(총명수 안내판에서)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산 봉우리. 자란봉? 연적봉?

어풍대(御風臺)
금탑봉 증층에 위치하고 있는 어풍대는 내청량과 외청량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청량지』의 기록에 따르면 열어구(列御寇: 고대 중국의 인물)가 바람을 타고 보름 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어풍대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금탑봉 중층에는 어풍대와 함께 치원대, 풍혈대, 요초대, 경유대 등이 나열되어 있으며, 이들 대에서는 기암절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의 연꽃 같은 봉우리와 연꽃 꽃술에 자리한 듯한 청량사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안내판에서)


다시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김생굴.
경일봉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 김생(711~?)이 글씨를 연마하던 장소인데, 상하가 절벽으로 되어 있고 그 중앙으로 수십 명을 수용할 만한 반월형의 자연암굴로 형성되어 있다.
김생은 이 굴 앞에 암자를 짓고 10여 년 동안 글씨 공부를 하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청량산의 모습을 본 뜬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인 김생필법을 확립하였다. 그는 당시 왕희지체, 구양순체가 유행하던 시기에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독특한 서법을 구사함으로써 가장 한국적인 서풍을 이끌어냈으며, 이로 인해 해동서학의 종조로 여겨져 한국서예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굴 앞으로는 김생암의 터가 남아 있으며, 굴 옆으로는 천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김생폭포가 위치하고 있다.(안내판에서)


탁필봉? 자소봉? 자란봉? 봉우리 이름은 몰라요.

경일봉 쪽으로 오르려고 잠시 맘 먹고 오르던 길에서 만난 계곡

아마도 탁필봉일 것 같네... 그러면 왼쪽은 연적봉일 듯...

경일봉 가다 아무래도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서둘러 청량사로 걸음을 옮김. 이곳은 청량사만큼이나 유명한 청량산 산꾼의 집. 오늘은 약초로 만든 차 마시는 것 생략하고 청량사로.

청량정사. 퇴계선생이 청량사 와서 쉬고 공부하던 곳. 큰 학자가 있는 게 이렇게 유적을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공부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장사꾼은 기억이 안 되도 학자는 이렇게 곳곳에서 기억하고 있다.

청량정사 쪽에서 바라본 청량사. 나무계단이 예쁘다.

청량산청량사 범종각. 여기서 봐도 산을 보이나 부석사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산만큼 찡하지는 않는듯.

요사체 들어가는 문. 이 문은 밖에서 잠그는가... 완만한 곡선에 아이들 소꿉장난에 쓰는 장신구마냥 귀엽고 정겹다.

삼신각 가는 길에서 본 청량사의 지붕.

산신각 옆 조그마한 계곡, 그리고 작은 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피안인가...


종무소 지나 저만치 유리보전이 보이고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
청량사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3년(663)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라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청량산에는 연대사라는 사찰을 중심으로 대소 26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료의 요람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유리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한 다포계의 집이다. 그리고 공포는 외1출목 내2출목의 형식으로 첨차의 짜임이 고졸하고 쇠서의 내부 끝은 연화형 조각을 새기고 있으며, 전면 중간 기둥 위에는 용두와 용미를 주두 밑에 내외로 뻗게 하고 있어, 조선 후기적인 특징을 보여준다.(안내판에서)


유리보전 앞 마당과 5층석탑. 산사음악회를 했다던데 이곳에서 했을 듯.

5층석탑.

찻집 옆 입구쪽으로 내려가는 길. 청량사는 집도 집이지만 길이 고졸하니 보기 좋다.

내려온 길을 보면서.

청량사는 일주문이 없더니 공사를 했다. 비로소 간판(?)을 올리는가.

절 쪽에서 바라본 일주문. 청량산청량사 현판이 올라가겠다.

길에서 바라본 일주문. 단청 입히고 장식도 좀더 하려면 시주들 주머니가 좀더 가벼워지려나. 


절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