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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대로70

목포 목포 처음 가보다. 목포역. 원추리. 목포 유람선 선착장. 왼쪽 돌출된 곳이 갓바위. 평화공원 앞 목포 바다. 2013. 6. 23.
강진 무위사(無爲寺) 3 2013. 6. 23.
강진 무위사(無爲寺) 2 산신각. 글씨 참... 스님들의 글씨는 아무튼 특이하다. 선각대사 탑비. 보물 507호. 벽화도 보물이라는데 문이 닫혀 들어가질 못했다. 아쉽다. 무위사 삼층석탑. 극락보전. 국보 13호. 극락보전 앞 치성 드리는 연꽃무늬장식 돌바닥. 2013. 6. 23.
강진 무위사(無爲寺) 1 강진에 멋진 절이 있더라. 무위사... 절의 느낌이 부석사와 비슷하다. 제법 규모도 크고 특히 극락보전은 오래된 목조건물의 위엄도 있고 멋지다. 바쁘게 다녀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아쉽다. 그나마 사진으로라도 천천히 음미해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하였고, 875년(헌강왕 1) 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고 개칭한 뒤, 많은 승려들이 주석하였다. 905년(효공왕 9) 선각(禪覺)이 3창하였다.1407년(태종 7) 무위사가 천태종(天台宗) 17자복사(資福寺) 중의 하나가 되었다. 1430년(세종 12) 극락전을 지었는데, 이 건물은 현재도 남아 있다. 1555년(명종 10) 태감(太甘)이 4창하면서 무위사.. 2013. 6. 23.
강진 금서당(琴書堂) 금서당(琴書堂)강진 영랑 생가의 약 150m 위쪽, 보은산 선인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일찍부터 서당 역할을 하였고 일제강점기에 사립 금릉학교에서 강진공립보통학교를 거쳐 강진중앙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면서 강진 지역에 신학문을 보급하는 터전이 되었다. 한동안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1950년 이후 화가 김영렬이 매입하여 관리해왔으며, 2003년 김영렬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부인 박영숙이 남편의 작품을 보관하며 관리하고 있다. 건물은 반쪽자리 2채의 건물을 붙여놓은 모습인데 반쪽은 기와, 다른 반쪽은 슬레이트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몸체도 오래된 옛집에 벽돌집 절반을 붙여지었다.(두산백과) 금서당 가는 좁은 길에 핀 어성화. 강진 신교육 발상지 금서당. 유명한 화가인 모양인데 마음이 바빠 글을 제대로 읽.. 2013. 6. 23.
영랑생가 (강진) 강진은 청자, 영랑 김윤식, 다산 정약용 선생 셋이 유명하다. 군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영랑생가. 주인이 바뀌었으나 군에서 구입해 복원했다고 한다. 시인의 시처럼 영랑생가에는 온통 모란이다. 내가 갔을 때는 꽃은 다 지고 굵은 씨방이 뚜렷하다. 영랑 시 하나 보면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시름에 잠길테요. 5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출처] 모란이.. 2013. 6. 23.
문제의 백인제 가옥 그리고 북촌 서울시장 박원순이 관사로 사용하겠다며 보수 중인 백인제 가옥. 안동 명문가 종택만한 규모. 건물은 일제때 개보수 되어 전통적인 맛은 적지만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넓게 한옥 부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 아마 김성수 가옥, 윤보선 가옥 정도 되어야 이만 하려나. 원순 시장은 욕심 버리고 다른 곳에 관사 정하고 이곳은 잘 정리하여 시민에 공개하기를... 시 중심이 공동화 되니 명문 초등학교에 학생수가 너무 적고... 최고의 건축설계사무소 공간도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캐피탈이 견디기 힘든 모양입니다... 2013. 5. 26.
양재천 겨울 (3) 2013. 5. 26.
관악산 칼봉 2013.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