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한 괘

화수미제(火水未濟)

by 무소뿔 2005. 1. 9.

블로그도 욕심이 되는 것 같네요. 한 동안 괘를 짓지 못하고 공부만 합니다. 아주 쪼끔식만요. 연말에 아버님 상을 당해서 고향에 다녀왔지요. 여러 가지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삶과 죽음, 사람의 관계, 종교... 그런 느낌을 적어 대학동창들과 함께 하는 카페와 제가 다니는 도장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습니다.괘에관한글도 되는 셈이니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도장에 올린 글을 여기에 올립니다.

도우님들, 안녕하시죠?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십시오. 밝도 많이 받으시고요.

이런 걸 도장 홈페이지에 올려도 되는지 모르지만, 암튼... 연말에 아버님을 고향에 모셨습니다.

오랜만에 가본 고향은 농한기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더군요. 찬 바람을 맞아야 튼튼해지는 마늘과 보리가 논과 밭에서 겨울을 나고 있고, 나이 든 사촌형님들은 올 겨울이 춥지 않다며 내년 농사를 걱정합니다.

고향 땅 평야는 끝없이 넓고 저희는 기껏해야 4-5미터나 될까하는 얕은 선산에 아버님을 모셨습니다. 옆에는 얼마 전 병으로 세상을 먼저 뜨신 사촌형님이 계시고 그 옆에는 큰아버님이 계십니다. 또 그 옆에는 다른 큰아버님과 큰어머님이 계시지요. 세상 순서는 나는 순서로 정하지만 선산 자리는 돌아가시는 순서로 정했더군요.

세상은 무상입니다. 항상된 게 없지요. 다 변합니다. 變化지요. 삶과 죽음은 그 變과 化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사람들은 피붙이와 지인의 죽음에 아쉬움과 슬픔을 느낌니다. 저요? 당연히 슬펐죠, ㅎㅎ.

제갈공명이 그러더군요. 죽음은 본디 있던 곳으로 가는 거라고. 그러니 슬퍼할 게 없답니다. 다만 올 때 계획했던 일들을 마치지 못하는 게 그게 아쉽다고 하더군요. 위인의 마음은 그러한데 우리는 어떨까요?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주역의 64괘 중 마지막 괘를 火水未濟 괘라고 합니다. 마지막 괘이지만 '마칠 終' 자를 쓰지 않고 '비로소 始' 자를 씁니다. 終則有始지요. 이렇게 終始라고 쓰는 것은 본디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월과 계절을 봄여름가을겨울 이런 식으로 끊을 수 있을까요. 살을 에이는 추위가 몰아쳐도 땅 속에서는 작은 씨앗이 싹틀 준비를 합니다. 생명력이 가장 강하게 살아 있는 때는 오히려 한겨울인 셈입니다.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변화할 뿐입니다. 무상이지요.

이번 아버님을 모시면서 우리 나라 종교 문제의 심각성을 목격했습니다. 물론 코끼리 꼬랑지 만지는 식이지만요. 어떤 종교를 믿든 자신의 신앙을 타인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작은 촌락공동체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 세계가 분열하고 싸우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종교잖아요. 작은 소화제 한 알도 체한 사람의 신앙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종교가 소화제 한 알보다 편협해서는 곤란하지요. 우리의 종교도 서로 편을 가르지 말고 존중하면 좋겠습니다.

火水未濟 괘 가장 마지막 효를 풀이한 옛성현들의 말씀이 새롭습니다. 주역 마지막 괘 마지막 효는 종교문제를 다룹니다. 정치를 아무리 잘해도 종교간 갈등이 생기면 평화는 없는 거죠. 옛성현들은 믿음을 갖되 지나치지 말라고 합니다. 취할 정도로 마신 술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술이고, 취한 신앙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잘못된 편견이기 쉽기 때문이겠죠. 종교도 과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論語에 '신앙만 너무 좋아하고 배워야 할 걸 배우지 못하면 그 폐단은 사회의 적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요즘말로 '공공의 적'이 되는군요.

흠... 그렇지만 저는 종교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사람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북한산 백운대 하니 입맛이 댕깁니다. 도봉산도 ?아가고 싶었지만 우리 아버님이 말려서요... 이번엔 회사에서 줄줄이 써내야 할 일들이 많아 또 못 ?아갑니다. 다음엔 저 사는 일정하고도 맞아 같이 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