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맘 같은 글

[한완상칼럼] 후손들에게 평화의 열매를

by 무소뿔 2006. 8. 24.
[한완상칼럼] 후손들에게 평화의 열매를
한완상칼럼
한겨레
올봄 남북 적십자 간에 맺은 협약에 따라 대한적십자사는 평양 적십자병원의 현대화를 위해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조선적십자회에 전달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 이전에도 그를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던 나는 그와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6·15 공동선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나도 몇 가지 의견을 진술했다. 그는 진지하게 경청해주었다.중요성을 강조하기에 나도 몇 가지 의견을 진술했다. 그는 진지하게 경청해 주었다.

무엇보다 6·15 선언은 우리 겨레에게 역사의 분수령적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까닭은 그 시기를 전후로 남북 교류가 현격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1948년부터 2000년까지 52년 동안의 남북 교역량과 2000년에서 2005년까지의 교역량을 비교하면 후자가 전자의 1.9배에 이른다. 52년의 기간은 5년의 10배가 되는 긴 세월이지만, 놀랍게도 남북간 상봉 인원수는 100배 이상 늘었고, 생사 확인자 수는 무려 250배 넘게 늘었다. 그러니 2000년 6월은 분수령적 의미가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했다. 그도 놀라워했다.

게다가 남북 사이에 이뤄졌던 주요 합의문건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72년의 7·4 공동성명과 92년의 남북 기본합의서를 꼽지만, 이 두 문서는 모두 남북 최고 인사가 직접 서명한 것이 아니다. 6·15 공동선언만이 남북 정상들이 직접 합의·서명한 역사적 문건이다. 그렇기에 이것이 소중한 민족 공조의 한 규범이 될 수 있다. 이를 실천하자면 무엇보다 북의 정상이 이제는 답방해야 할 차례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남북 사이에 어려운 일이 생길수록 남북 정상이 서로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했다.

지금 북한은 민족공조를 중요시한다. 민족공조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총체성의 조건이요, 둘째는 지속성의 조건이다. 총체성의 조건은 우리 겨레 전체의 생명과 안전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문제에 대해 남북 당국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며 도와야 충족되는 조건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겨레 전체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주는 문제는 바로 핵문제다. 그렇기에 핵문제에서 북한 당국은 워싱턴만 상대하려 하지 말고, 서울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즉 ‘통남통미’(通南通美)를 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다소 불편한 듯했다.

민족공조의 지속성 조건은 이러하다. 이해관계에 따라 대화가 이뤄지면, 그것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대화는 ‘가다서다’를 반복할 것이다. 대화를 계속하려면 공조의 가치를 이해관계에만 묶지 말아야 한다. 이해관계에만 매달릴 때 평시에는 주는 만큼 받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나쁠 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악순환이 작동된다. 그러므로 공조가 지속되도록 하자면 ‘불구하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적게 줌에도 불구하고 많이 베풀고, 때림에도 불구하고 안아주려는 더 높은 자세가 참다운 공조를 지속시키는 힘이다. 이것은 바로 인도주의 정신이다.

이번 여름 우리도 수해를 심하게 겪었다. 그런데도 더 큰 수해를 입은 북녘 동포를 위해 우리는 쌀 10만톤과 상당량의 복구 장비를 보내기로 했다. 언뜻 보기에 퍼주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인도주의적 결단을 통해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조금씩이나마 향상된다면, 또 그만큼 평화가 착실히 이뤄진다면, 그것은 목전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장기적인 민족 평화에 필요한 참으로 소중한 나눔이 될 것이다. 이 나눔의 토양에서 열릴 평화의 열매야말로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대한적십자사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