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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알아야

조선의 사상과 역사...

by 무소뿔 2012. 3. 13.

이**  후배님. 와, 공대생이 역사까지, ㅎㅎ... 세조 얘기가 나오니 입이 근질근질해서 글을 남깁니다. 조선의 사상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서요. 조선은 성리학, 그 중에서도 주자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은, 국가이념이 바로 철학인 세계적으로 아주 독특한, 자랑스러운 국가입니다. 중국 성리학이 理, 氣 心 모두를 사고의 대상으로 삼았던 반면에 조선은 오직 理를 중요시하지요. 이를테면 현상보다는 원리를 중요하게 생각한 겁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원칙이나 원리는 청년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은 이 理로 고려의 폐단(현상)을 배척하고 나라를 세웁니다. 그런데 이 理, 하늘을 닮은 품성의 근본, 도덕의 원리를 배반한 정변이 조선초부터 발생합니다. 물론 태종입니다. 세조만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理를 배반하면서 집권한 태종은 아다시피 외척배제, 공신배제, 사병혁파 등을 통해 理를 구현하고 조선최고의 성군 세종을 낳습니다. 공이 과를 압도해버린 겁니다.

 

성군 세종을 도와 한글을 창제한 일등공신 중의 한 명이 세조입니다. 세조와 공주들이 아버지를 도와 집현전과 유림의 반대를 이겨내고 세계최고의 글 한글을 만들어내는 데까지는 좋았는데, 그가 다시 할아버지처럼 理를 배반했고, 그 배반의 상처는 조선 초기를 갉아먹습니다. 이건 이** 후배님이 얘기한 데서 알 수 있고요. 어쨌든 그 깊은 상처는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전국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몇 백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단종을 불쌍히 여기고 조카를 죽인 세조를 나쁘다 합니다. 그런 마음도 어찌보면 조선을 세운 성리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理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요.

 

배반의 상처 속에서 조선의 젊은 유학자들은 공부를 하며 理를 마음수양의 근본으로 삼습니다. 그러면서 理와 동떨어졌다 생각한 훈구파들을 비판하면서 중앙정치로 나서게 됩니다. 이 젊은 유학자들의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준 분이 바로 퇴계 이황 선생입니다. 퇴계선생은 26살이나 차이가 나는 젊은 학자 고봉 기대승 선생과 무려 8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기 논쟁을 벌입니다. 그 유명한 사단칠정 논쟁입니다. 사실상 젊은 학자 기대승의 판정승이라는 평판 속에서도 퇴계선생은 理, 즉 원칙에 대한 양보를 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기논쟁을 거치고 퇴계의 제자들(영남학파=동인)이 중앙정부의 핵심요직들을 차지하지만 불행하게도 임진왜란을 겪습니다. 온 국토가 산산조작이 나버린 왜놈들의 침략에 조선이 사실상 무너진 거죠. 영남학파는 곤혹스럽습니다. 理가 현상을 지배한다면 전쟁이란 있을 수 없는 거니까요. 퇴계의 제자들은 현실(氣)을 중시하는 기호학파=서인은 물론 理를 더 강화하여 氣(세상의 부조리)를 제압하고자 하는 강경파(북인)과도 갈라집니다. 그러나 이후 영남 남인으로서 꼿꼿한 기개를 펼치며 조선후기까지 서인에서 갈라진 노론과 연대도 하며 조선의 중앙정치에 관여하게 됩니다.

 

理의 운동성을 부정하며 理는 氣를 통해서만 구현된다고 주장한 기호학파의 대표주자는 물론 율곡 이이선생입니다. 율곡선생은 理를 현실을 초월한 이념적 존재로 만들어 氣의 중요성,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역설적으로 영남학파도 하지 못한 理의 절대화를 이룹니다. 그래야 현실의 부조리가 설명되니까요. 어쨌든 조선후기는 현실을 강조한 기호학파(서인.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는 거 알죠?)가 중앙정부를 실질적으로 장악하며 조선의 정책과 사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노론이 조선을 지배했다고 하지만 노론의 핵심 역시 理를 중심으로 한 주자학입니다. 즉 조선은 아주 철두철미하게 원칙을 중요시 한 나라라는 겁니다. 이 조선이 후기에는 서양의 과학기술에 밀려 서양열강과 일제에 강탈을 당하지만, 그때까지도 조선은 서양에 비해 생활수준과 교양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국가였습니다. 아쉽게도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해 시련을 겪으며 무너집니다. 어쨌든 일제 36년의 핍박시기에도 조선은 理의 정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독립과 자주를 위해 헌신하고 목숨을 초개처럼 버립니다. 오죽하면 윤봉길 의사가 상해에서 도시락폭탄으로 일본놈 장교를 포함해 여럿을 죽여버리자 장개석이 중국의 군대 전체보다 낫다고 표현을 했겠습니까...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또한 조선의 청년들이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후세의 평이 나올까요.

 

理를 강조한 주자학이 다 옳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근래 우리의 역사를 너무 소홀히 하고 허접하게 대하는 경향들이 있어 답답한 심정이었는데 이** 후배의 세조 얘기를 보고 경황없이 조선의 사상이 간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주절주절 쓰게 됐네요.(201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