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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대로

삼성산 삼막사(三幕寺)

by 무소뿔 2015. 8. 2.

관악산은 서울대입구 관악산입구에서 호수공원 지나 연주암으로 가는 길 방면이고 오른쪽 무너미고개부터 삼막사 있는 곳이 삼성산이다. 삼성산 정상 가는 길에 있는 삼막사는 원효 의상 윤필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산은 높지 않지만 옛날 같으면 멀리 송도 방향과 시화 방향 바다도 보였을 것 같다.

 

부처는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즉 깨달으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사상 위에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천불이 있다고 하여 사진처럼 천불을 모신 전각이다. 

 

월암당(月庵堂). 선방인 듯. 방문객의 출입을 반기지 않는다.

 

산신령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은 건 불교가 토속신을 접수하며 토속신앙의 핵심을 존중하여 지었다고 생각된다. 대웅전 또한 단군을 신앙하는 전통신앙의 흔적으로 본다. 보통 사찰이 산신각이나 칠성각을 통합하여 운영하는데 특이하게 삼막사는 따로 모시고 있다. 더 특이한 건 산신각이 전각을 지어 그 안에 산신령을 모시는 형태가 아니라 사진처럼 바위를 쪼아 양각하여 모시고 있다. 삼막사의 명물 삼존불이 마애불상이라 그런 연관하에 근래 산신각을 이렇게 지은 것 같다. 가까이 있는 호압사 산신령이 호랑이를 괴롭히는 데 비해 여기 산신령과 호랑이는 사이가 좋아 보인다. 호압사 호랑이만 경복궁 때문에 늘 괴로운 거 같다.

 

지석영의 형인 지운형이 꿈에 관음보살을 보고 그려 새겼다는 삼귀자(三龜字). 지석영은 종두법으로 유명하나 동학혁명 때 토벌군으로 활약하여 요즘의 평가는 예전 같지 않다. 구한말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윗대들의 한학 실력은 모두 대단했던 것 같다.

 

남녀근석. 큰 돌은 남자의 성기, 작은 돌은 여자의 성기를 닮았다. 원효가 삼막사를 짓기 전부터 이 바위는 전통신앙의 숭배대상이었다고 한다. 돌을 만지면 기운이 통해 순산과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칠성각 건물 안에 있는 마애삼존불. 마치 석굴암에 온 것 같은 느낌. 조선 후기를 대표할 만한 걸작으로 석굴사원의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관음육전. 여섯 분의 관음을 모셔 그렇게 이름 지은 것 같다.

 

망해루. 내 고향 김제에는 망해사가 있는데 삼막사에는 망해루가 있다. 망해사 앞 새만금 바다는 간척하여 맨땅이 되어 가고 망해루 앞 시화와 송도도 매립되어 육지가 되어 있다. 망해루답게 과연 옛날에는 인천 송도 방향과 시화호 근처 바다가 한 눈에 보였을 것 같다. 

 

부도답이겠지.

 

삼막사 기념비

 

삼층석탑

 

범종각. 여인네 혼자 낮잠을 자고 있다. 

 

번뇌와 해탈은 둘이 아니기에 불이다. 불이의 뜻을 알면 해탈할 수 있기에 해탈문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