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음력 3월 11일 丙戌년 壬辰월丁卯일주입니다. 주로 木火로 이루어진 간지에 壬水가 하나 있지만丁과 사랑에 빠져 더욱 木火가 힘을 내는 날이네요. 오늘은 일주일 전에 지은 괘 풀이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날 중요한 날이었거든요. 작년 사업에 이어 제안서를 냈고 3월 30일 제안설명회를 했습니다. 발표도 바로 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 설명회 가기 전 아침에 괘를 지어보았지요. 그런 날은 뭐 그냥 솔직하게 물어보았습니다. 되겠니 안 되겠니 하고요. 흠... 결과는 졌습니다. 제안내용이나 제안발표는 당연 우리가 나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업에는 제안내용도 중요하지만 다른 복잡한 관계가 있잖아요. 하여간 그래서 지고 올라왔습니다. 워낙 일도 잘 알고 준비도 나름대로 했습니다. 그날 지은 괘도 괜찮아 내심 당연히 되리라 생각했지요. 산화비(山火賁) 괘에 초효와 5효가 동했습니다.
山火賁 괘는 火雷서합 괘 다음에 나옵니다. 입안에 음식물이 있으면 답답해서 씹어 조화를 이루듯 사회를 이루는데 좋지 않은 자들을 순하게 해서 밝은 사회를 만드는 게 서합 괘입니다. 이렇게 씹어 사회를 이루는데 이제 좀 꾸며야 합니다. 그래서 賁는 ‘꾸밀 비’이기도 하고 ‘빛날 비’이기도 합니다. 괘사를 봅니다.
賁은 亨하니 小利有攸往하니라.
(賁는 亨通한 것이니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다.)
가슴이 약간 철렁 했지요. 안동에 가서 제안설명을 해야 하는데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다니요... 어쨌든 꾸미니 형통합니다. 크게 이롭지는 않고요. 왜 크게 이롭지 않고 조금 이로울까요. 賁 괘는 地天泰 괘에서 왔습니다. 태평한 세상에서 음양이 한 쪽으로 몰리지 않고 맨위 상육이 강한 양 사이에 와서 다름이 생기니 무늬가 생기고 그래서 꾸며집니다. 꾸미니 형통합니다. 이렇게 되면 위괘가 간상련 山괘가 되잖아요. 山은 소남이니 小이고 꾸미는 것은 이로워서 利이 小利가 됩니다. 조금 이롭습니다. 그래도 뭔가 이치가 부족하지요? 양이 위에 올라가면 天文이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천문을 보고 일을 할 때는 크게 이롭지 않다고 합니다. 천도는 서서히 움직입니다. 일확천금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익이 적다고 합니다. 흠... 대산 선생님 풀이 어떻습니까? 천도가 드러난 것을 사람이 읽는 것을 天文이라고 한다면 人文은 뭐가 될까요? 내괘는 불입니다. 밝지요. 문명해서 외괘를 보고 그칠 때 그칩니다. 그칠 때 그치는 것, 지어지선(止於至善)을 하는 것을 보고 人文이라고 한답니다. 인문은 곧 인의도덕이니 위로는 천문을 보고 時變을 살펴 아래로는 인문을 보아 인문으로 화성하게 합니다. 그게 賁 괘의 참 뜻입니다. 괘의 형상을 보고 이렇게 천문과 인문을 말씀하시는 옛 성현들에게 새삼 고개가 숙어집니다. 얼굴은 못 뵈었지만 이렇게 편하게 풀어주시는 대산 선생님께도요.
동한 효들을 볼까요.
初九는 賁其趾니 舍車而徒-로다.
(초구는 그 발꿈치를 꾸미니 수레를 버리고 걷는다.)
내괘 이허중 불괘는 수레를 뜻하기도 합니다. 수레를 놓고 걸어가는 것은 쉽게 갈 수 있는 수단을 버리고 간다는 뜻이 됩니다. 무슨 뜻일까요. 초구가 지천태 상육이 변해서 이웃이 된 육이를 버리고 육사를 만나러 간다는 뜻이랍니다. 가까이 있어 쉽게 응할 수 있는 육이는 세상의 유혹이 되겠군요. 제대로 서로 응하는 육사를 만나기 위해 수레를 버리고 걸어가야 합니다. 그 수레에는 의리를 태울 수 없으니까요.(義弗乘) 그래서 가는 길은 멉니다. 멀지만 마침내 바른 길로 돌아가게 됩니다. (行路雖遠 終歸正導)
六五는 賁于丘園이니 束帛이 잔잔(작을 잔)이면 吝하나 終吉이리라.
(육오는 언덕에 빛남이니 비단 묶음이 작으면 인색하나 마침내 길하다.)
오효와 응하는 자리는 이효입니다. 그런데 이효도 음이니 서로 음양응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구와 꾸밉니다. 간상련 山괘이니 언덕(丘園)이 되고, 육오가 상구에게 시집을 가는데 폐백인 비단을 꾸게 묶지 말고 검소하게 꾸며야 합니다. 또 육오 왕이 상구 국사를 만날 때에 폐백을 필요로 하지만 잔잔하게 작게 꾸며야 합니다. 임금이 나라살림을 검소하게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有喜)
이런 괘가 나왔습니다. 그날은 괘 풀이를 잘못해서 초효와 4효가 동한 걸로 생각했습니다. 괘를 짓고 물어보는 건 내괘이니 초효가 저의 처지이고 바라보는 4효가 설명회 주관기관이라 생각했지요. 초효와 4효가 서로 응하니 그날 제안설명회는 우리를 위한 자리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안서 내용도 좋아 자신도 있었고요. 초효는 어렵지만 천천히 님을 향해 가고 4효는 가까이에서 자기를 유혹하던 3효를 뿌리치고 초효를 맞습니다. 사실 사업계획서 막바지에 세세한 걸 도와준 곳은 경쟁사였거든요. 점도 이 정도면 기가 막히구나 생각하고 당연히 저희 회사가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아... 실제로 동한 건 5효입니다. 바보같이 동한 효 풀이는 엉뚱한 걸 보았던 거지요. 초효는 초효의 길이 있고 5효는 5효의 길이 있습니다. 님이 다르네요. 님이 다르지 않다고 우기면 5효는 체가 되고 초효가 용이 되나요? 어떻게 해석할까요? 검소하게 사업을 하라는 뜻이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수레를 버리라는 것은 다른 사업을 찾아보라는 뜻일까요? 그날 제안설명을 한 사업은 저희 회사로 보면 제법 큰 금액입니다. 어쨌든 기본이자 당장은 인색합니다. 그리고 의리를 찾기 때문에 가는 길이 쉽지가 않습니다. 마침내는 길하겠지만요.
초효와 5효가 변하면 풍산점(風山漸) 괘가 됩니다. 漸은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뜻이고, 여자가 시집가는 걸 뜻하지요. 기러기가 물가에서 반석에서 마침내는 하늘로 올라가는 여섯 개의 절차로 비유한 괘입니다. 漸 괘의 단전은 바른 자리를 얻어 공이 있고 가히 나라를 이룬다고 합니다. 시집간 장녀가 안 주인이 되어 바르게 살림을 하니 나라로 치면 온 나라를 바르게 살림하는 셈이지요.
이쯤 되면 마구 헷갈립니다. 우리가 사업을 따겠냐고 물었는데 답이 어렵습니다. 동효를 잘못 푼 것처럼 초효와 4효가 동했다면 결과가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초효와 5효는 별 인연이 없거든요. 주역은 어렵습니다. 그날이 실망스러워 한동안 쳐다보지 않다가 이제사 그날의 괘를 풀어봅니다. 영발이 안 서서 그런가요... 제안에 떨어졌어도 내용과 기획은 우리가 나은 걸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얼마간은 비리가 있지 않나 의심도 하고 있지요. ㅎㅎ 식구들이랑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저희 식구는 한편으로 좋아합니다. 다 이렇게 양면의 모습입니다. 그날 저희 회사는 떨어졌습니다. 궁극의 결과가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게 전화위복이 되어 서울에서 다른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