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 큰길 따라 중간중간 옛길 푯말이 보입니다. 옛길이라고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산길입니다. 중간중간 한시도 적어놓고 쉬는 자리도 만들어 놓은 작은 이벤트형 산길이라고 하면 될까요. 새재 큰길과 갈라졌다가 몇 십 미터 가서 만나고 또 갈라졌다가 만나는 그런 길입니다.
옛길을 지나 또 오르면 오른쪽으로 작은 정자가 하나 있고 산기슭에 나뭇가지로 발을 만들어 내린 작은 바위굴이 있습니다. 새재에는 전설이 몇 개 전해내려 오는데, 그중 흥미로운 얘기가 이 바위굴에 관한 이야기더군요. 젊은 남녀의 이야기이고 문경새재에 비가 내릴 때(새재우) 바위굴에서 만나 잠시 사랑을 했다가 그때 만들어진 아들의 노력 덕분에 나중에 다시 만난다는 해피엔딩 구조입니다. 직접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제법 큰 게 여느 집 안방만한 공간입니다.
바위굴 조금 위쪽에는 임진왜란 때 쳐들어오는 일본놈들을 막기 위해 모인 의병과 신립장군에 관한 얘기가 내려옵니다. 이야기 정황을 보면 무척 중요했던 전투였는데, 신립장군의 판단 잘못으로 전쟁 전체가 큰 시련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비록 전투에서 졌지만 저는 신립장군과 의병들을 높게 평가하고 대우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놈들이 쳐들어오자 왕과 신하들은 수도를 버리고 도망치기에 바뻤고, 저희들의 삶만 도모하려고 나라를 중국이나 일본에 팔아먹을 궁리를 했잖아요. 그들에 비하면,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 걸고 싸운 이들에게 졌다고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농사만 짓던 이들에게 무슨 전략과 병법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돌조각 몇 개에 초라한 이진터를 보니 마음이 씁쓸합니다. 그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일테니까요.
2관문을 지나면 굵직한 이야기 거리가 별로 없이 그냥 아주 예쁜 산책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숨쉬면서 찬찬히 자연을 보며 오르면 좋은 길입니다. 민요비를 마주치걸랑 문경새재 아리랑도 한 번 들을 일입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할머니의 목소리 두 가지 노래인데, 저는 할머니 목소리가 좋더군요. 발음도 더 선명하고 가사도 잘 들어옵니다. 지나는 사람들은 진짜가 아니니 진짜니 하며 문경새재 아리랑을 얘기합니다. 글쎄요...
옛날 굽이굽이 이 길을 오르내릴 때는 사연이 많았을 겁니다. 문경새재는 영남서 서울 가는 몇 개 안되는 중요한 길입니다. 새마저 넘기 힘든 고개이기도 하고,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에 있는 고개이기도 해서, 또는 억새풀이 많은 고개라 해서 새재라 한다지요. 일반 상민에게는 사대부 전용길로 그들만의 길일 뿐 별 관심 없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선비는 정말 중요한 과거시험길이고 돌아올 때는 희비가 교차했겠죠. 붙으면 금의환향 길이 되겠지만 떨어지면 또 어땠을까요? 문경(聞慶)은 경사를 듣는 다는 말이잖아요. 호남의 선비들조차 이 길을 오르면 과거에 붙을 수 있다하여 멀리서 돌아 오르던 길이랍니다. 서울서 올 때는 임금과는 이별이지만 부모에게는 가까워지는 충효가 교차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마침내 도착한 조령관, 영남3관문입니다. 제법 크고 길다란 성벽에 성루를 갖추었고, 그 자리에서 남쪽을 향해 올라온 길과 백두대간 자락을 보니 장관입니다. 이렇게 바라보는 맛이 있으려면 역시 올라와야 합니다. 끝까지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경새재는 아직 전통에 대한 존중이 있어 3관문 옆에도 산신당이 있습니다. 문틈 사이로 보니 호랑이를 데리고 계시는 멋진 산신령님이 보입니다. 이 주흘산에만 산신령이 계시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나라 모든 산에 산신령이 계시고 그 옆에는 맹호가 눈을 부릅 뜨고 허튼 짓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계실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새재길 참 좋습니다. 식구들과 손잡고, 따로 혼자서라도 명상하며 걸어도 좋습니다. 짙은 녹음과 연출한 물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요즘말로 하면 트래킹 코스로도 일품입니다. 새재 정상 시 두 개 소개합니다.
-대구 어버이 뵈러가는 길에 새재를 넘으며(서거정)
꾸불꾸불 새재 길 양장 같은 길
지친 말 부들부들 쓰러질 듯 오르네
길가는 이 우리를 나무라지 마시게
고갯마루 올라서서 고향 보려함일세
-새재(이명덕)
새벽을 무릅쓰고 새재에 올랐더니
따스한 봄기운이 때마침 자욱하다.
북쪽으로 바라보니 임금님은 멀어지고
남쪽으로 내려오니 어머니와 함께 하네
어수선한 여행길 헤매기 일쑤라
아득하고 푸르른 하늘만 벗 삼네
간절한 편지 한 장 띄우고 싶건만
근심이 다하도록 전해 줄 이 없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