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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땡땡이... 주역과 금강경.

by 무소뿔 2005. 2. 26.

토요일 오후...

아침에 나오는데 아내가 잠자는 아이들 깨워 아버지 오늘 집에 못 들어오시니 인사하라 한다. 언제 봐도 좋은 녀석들... 그 놈들은 실 눈을 뜨고 손 살짝 흔들어 인사를 대신한다. 돈만꼬박꼬박 벌어다주면 우리집은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집이다. 월급날 월급은 가져오지 않고 밤 새러 가는 서방의 뒷모습에 아내는 몸 잘 챙기라 한다. 그러지요... 미안합니다...

이번 제안서는 참 여럿이도 달려들었다. 제법 규모가 되니 이 만큼 달려들어야 할 것도 같은데 생각을 모으는 작업이라 역시 쉽지가 않다. 셋 정도가 모여 작업하는 게 가장 능률이 나지 싶다.

이번 작업은 내게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부터 준비해온 작업을 마무리 짓기 때문이다. 회사도 이번 일 떨어지면 문 닫자 하니 쫄리기도 하고. 사실 안 될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 그만큼 결과가 무섭기도 하고...

대산 선생의 주역 해설서를 보면 중천건 괘를 설명하시다가 스승인 야산 선생과 금강경의 도사가 한 판 붙는 정황을 이야기하신다. 금강경 도사가 야산에게 "주역 좀 공부 했다지요?" 그러니 "예, 조금 했습니다." 했다. 야산이 금강경 도사에게 "금강경 공부하셨다지요?" 하니 "뭐 조금 했지요." 하며 탐색전을 편다. 금강경 도사가 야산에게 '주역이 뭐냐'고 물으며 잽을 날린다. 야산이 '구오'라고 하니 그 극치점이 뭐냐 한다. '점'이라 하니, 금강경 도사가 "그럼, 술(術)이네?" 하며 훅을 날린다.

지켜보던 관중들이 야산이 맞고 다운되나보다 생각하는데, '술이 맞다'며 가볍게 커버하며, 그러면 '금강경은 뭐냐'고 묻는다. 금강경 도사가 '파상(破相)'이라 대답한다. '관중들은 여전히 도사의 우세를 보며 다음 동작을 지켜보는데, 야산이 '파상? 그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는 파상?' 하니 도사가 끄덕끄덕한다. 여전히 금강경 도사의 우세...

야산이 금강경 구절을 인용하며 '빛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면 이는 사도니 여래를 보지 못한다'고 하며 '단 하나 볼 수 있는 법칙이 있는데 꿈이나 환상과 같고 물거품이나 그림자 같고 이슬도 같고 번개도 같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럼 이슬과 번개가 파상이냐'고 물으니 전세 역전이다.

금강경 도사가 어물쩡 '그건 순간'이라 얘기하니 관중들은 도사의 휘청이는 모습을 보며 버궈워하는 걸 느낀다.

야산이 '이슬이 반짝 내렸다 반짝 사라지는 걸 순간이라 하고, 부싯돌 비벼 번쩍이는 걸 순간이라고 하는데, 이슬 반짝 내리게 하는 기운과 부싯돌의 포장력은 영원한 것이니 결코 순간이 아니다' 하니 금강경 도사가 휘청이며 쓰러지는 것만 같다.

야산이 '점(占) 자는 하늘과 땅(ㅣ)의 이치를 점쳐 아는 것(')이라는 복(卜) 자에 입구(口) 자이니 주역을 아무리 많이 배웠더라고 점술로 풀이하여 내놓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그 한판은 끝을 맺는데, 여기서 말하는 구오가 용(龍) 시리즈로 유명한 괘이기도 한 중천건 괘의 구오를 의미한다. 선천과 후천이 바뀌는 걸 알려주는 주역의가장 중요한 효라고 하는데...

난 이 중요한 제안서를 쓰며 이렇게 살짝 딴짓을 한다. 흠... 제안서 낼 때 점을 쳐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