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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같은 글

[김선주칼럼] 햇볕정책 이외의 대안은 있는가

by 무소뿔 2006. 9. 21.

얼마 전 직업외교관한테 전해들었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외교가 생긴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의 대통령들은 정상회담을 하면 실무자들이 챙긴 것을 추인하고 사진 찍고 왔지 미국에 요구할 것을 요구하고 ‘아니오’ 비슷한 이야기라도 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륜과 지식, 비전과 철학으로 미국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자주독립국 외교관이 됐다는 뿌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민족도 이기적이다. 한국의 국익과 미국의 국익은 다르다. 한국도 미국도 정권은 바뀐다. 한반도는 김 전 대통령의 말마따나 우리가 이땅을 떠메고 어디로 가지 않는 한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영원히 같을 수는 없다. 그럴 때 ‘아니오’라고 하면 반미고, 반미는 곧 친북이라고 몰아세우는 한 우리나라엔 외교라는 것이 필요없다.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과 남북정상의 만남이 이뤄지면서 국민들은 한반도에 전쟁위협이 어느 정도 사라졌고 이제는 차근차근 앞으로만 나가면 되겠다는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북한과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 해 오던 관행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천만다행이었다. 퍼주기의 결과이고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면 어떤가. 그런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퍼주기가 북한을 위해서인가. 좁게 보자면 그렇겠지만 넓게 보면 대한민국, 한반도를 평화롭게 하고자 하는 것 아니겠는가. 북한이 별로 안 변했다는 것이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고는 있지만 햇볕정책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 국민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걸핏하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지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 군인 출신 대통령들도 남북 정상회담을 원했고 김영삼 대통령도 그것을 열망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미래가 늘 불안하다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거의 정권을 잡은 것처럼 모든 것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라고 주장하는 한나라당은 북한 경제의 철저한 봉쇄도 옳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선제공격을 해 북한을 붕괴시켜도 옳다는 식으로 막나가고 있다. 만약 자신들이 집권한다면 그것이 족쇄가 될 것인데도 남북문제에서 책임감 있는 대안을 못 내놓고 정치 공세용으로 이용한다.

한반도의, 남한의 운명을 책임진 수권정당이 되려면 북한의 위기는 남한의 위기가 되리라는 전제에서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쟁광이어서 핵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고 궁할 때 마지막으로 써먹으려는 비상용·방어용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우리가 북한을 달래고 퍼주고 인내하는 것은 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다. 남한과 한반도를 위해서다.

지금 나는 중국 산둥반도의 웨이하이에 와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3천곳 넘게 진출한 도시다. 동행의 기업인은 수십번 왔는데 올 때마다 역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두렵다고 했다. 새벽 여섯시에 나가본 시장은 넘치고 붐볐다. 일당독재가 수십억 인구를 정치적으로 옥죄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행복하고 배불러 보였다. 이보다 더 역동적인 도시를 방문했을 김정일 위원장은 지금 고립무원 상태다.

우리나라 경제인들이 중국에 위협을 느끼면서 눈을 돌린 것이 북한이다. 윈-윈 게임의 가능성이 남북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햇볕정책밖에 길이 없는데, 기회가 왔는데도 우리 민족이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이 불행이 불길한 예감까지를 동반하고 있어서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