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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눈물

by 무소뿔 2005. 8. 19.

요즘은 눈물이 많아졌다. 11일인가 12일인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을 하다가 정작 스탈린에게 첩자 혐의로 목숨을 빼앗기고 집안은 집안대로 풍비박산이 된 어떤 이의 이야기를 지방 라디오로 듣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더라. 풍족했던 집안은 가장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일제가 생계수단을 빼앗아 형편없어지고,유복자 아들은 해방후 아버지를 찾아나섰다가 행방을 못찾고 좌절하는데,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마땅한 생계거리도 없이 술만 먹다가 딸 셋을 남기고 죽어버린다. 며느리도 없고 할머니(독립운동가의 아내)와 손주 셋이 남아 사는 이야기를 듣는데, 억장이 무너진다. 이게 다 청산을 못한 까닭이다.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주말 길을 달려 집에 오는데 정태춘이 노래를 한다. 아버지 산소에 가는 이야기다. 모진 세파 속을 헤치다 잠드신 자리, 지친 걸음 멈추고 홀로 쉬시는 자리로 내가 간다. 그곳에 아버지 손발 시리지 않게, 이승에서 못다하신 말씀 들으러, 다시 볼 수 없는 분 그 분 기리러, 석상 하나 없는 아버지 무덤에 잔 부으려고 간단다. 우리 아버지도 그 흔한 석상 하나 못해드렸는데... 눈물이 자꾸 난다...

지난 15일 운좋게 민족대축전 행사 중 하나인 남북축구경기를 아이들과 같이 보았다. 그것도 선수들과 가까운 세 번째 열에서. 사실 축구도 축구지만 범민족 대회 할 때마다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다가 못 갔는데 올해는 운이 닿았던 모양이다.그건 내게는 복이었는데 아이들에게는 어땠을까?

축구장에 가니 온통 통일을 그리는 사람들의 잔치다. 세상에... 대회참가 자체가 불법인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월드컵경기장을 빌려 전국민 잔치로 올려놓았다. 그것도 감격스럽다. 그래서 또 눈물이 나려한다.

트랙을 도는 범민족 대표와 재외국민대표들의 행진을 보며 또 눈물이 나려 한다. 가만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는데, 모두가 이 감격에 벅차한다. 청산을 한 북녁의 형제들은 외세배격을 자신있게 얘기하는데, 일전에 들은 그 독립운동가 집안이 떠오른다. 그래서 또눈물이 나려한다.

요즘 EBS에서 도올이 독립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서 부랴부랴 안동 하숙집에서 노트북으로 연결해 보았다. 도올은 볼 때마다 감탄하는데, 이번엔 마전십자령 전투에서 활약한 조선의용대의 활약을 이야기한다. 중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별 생각이 있었겠는가. 수없이 쳐들어왔다가 사라지는 변방의 오랑캐 정도인 것을. 그 와중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다가 등소평과 팽덕회를 살리고 원통하게 가버린 윤세주와 진광화 선생 등의 활약은 정말 눈물겹다. 그저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려 한다. 프로그램 막판 도올이 윤세주 선생의 묘비를 안고는 엉엉 울어버린다. 나도 운다...

요즘은 툭 하면 운다. 낫살이나 먹은 놈이 민망한 일이지만 할 수 없다. 도올 우는 모습을 보니 세상이 다 그런 모양이다. 좋은 일로만 울 수야 없지만, 원통해서 억장이 무너져 우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