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괘

9월 8일 천산돈(天山遯)

무소뿔 2004. 9. 8. 09:17
9월 8일庚寅 일주입니다.

오랜만에 괘를 지어봅니다. 그 동안 괘를 짓는 것보다 책을 보았는데 주역은 역시 점이잖아요. 神과의 소통이 될까요. 영업이 잘 안 풀려 걱정입니다. 사실 앞날이 깜깜하거든요. 그걸로 한번 괘를 지어보았습니다. 천산돈(天山遯) 괘에 초효가 동했습니다.


遯은 ‘피할 돈’이랍니다. 아래는 산이고 위는 하늘인데, 하늘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지만 산은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하늘은 군자이고 아래 산은 소인입니다. 소인은 욕심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해 그쳐 있고 군자는 욕심을 버리고 미련없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습니다. 내괘를 보면 두 음이 안에서 실권을 쥐고 세상을 어지럽게 하니 군자가 소인을 피해 물러나는 모양이랍니다. 흠... 괘 뜻은 멋있지만 괘로 앞날을 물어보는 제 마음은 답답하네요.


괘사입니다.

하니 小利貞하니라

(遯은 亨通하니 바르게 하면 조금 이롭다.)


대산 선생님은 주역을 군자의 학문이라 하십니다. 군자가 遯하는데 사실 형통할 까닭이 없답니다. 그러나 어지러울 때 물러나는 것이 오히려 형통하다는 뜻이랍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사회를 바르게 만들어보려고 하지만 소인 때문에 잘 되지 않으니 군자가 크게 이롭지 못하고 조금 이롭다고 합니다. (小利貞)


단전을 보면, 무조건 遯하라는 것은 아니랍니다. 遯을 해서 형통하지만, 돈을 하지 않을 조건도 있다는 거지요. 외괘에서는 구양이 양자리에서 위를 얻고 있고 내괘에서는 음이 음자리에 바르게 있어 육이와 구오가 잘 응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剛當位而應) 그러니 아직은 도망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대를 걸고 더 버텨보아야 합니다. 그러다 정 안 될 때에 물러나라는 뜻이랍니다. (與時行也)


오늘 동한 초효는 무슨 뜻일까요.


初六遯尾하니 勿用有攸往이니라

(초육은 도망하는 데 꼬리니라. 위태로우니 가는 바를 두는 것을 쓰지 말라.)


초육은 동물로 치면 꼬리랍니다. 遯 괘는 피하고 물러나고 도망치는 때입니다. 남들은 다 도망하고 있습니다. 초육도 도망을 가는데 꼬리를 밟히고 결국 붙잡히고 맙니다. 초육이 변하면 내괘가 불괘가 되는데, 불은 가만 있지 않습니다. 만약 불처럼 급하게 갔다가는 붙잡힌다는 뜻이랍니다. 흠... 대산 선생님은 점을 쳐서 이런 자리가 나오면 ‘도망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난리가 나서 피난하기 위해 점을 쳤는데 이 자리가 나오면 도망치지 말고 가만 있어야 한다고 하네요. (勿用有攸往)


상전을 보면

象曰 遯尾之不往이면 何災也-리오.

라고 초육이 비록 도망칠 때 맨 뒤 꼬리가 되어 위태롭지만 그 자리에 있으면(不往) 아무 재앙이 없다고 합니다. (何災也)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사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그게 뭐 쉽지 않잖아요. 어렵지만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정진하라는 뜻으로 선현의 말씀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