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해인사 4 - 대적광전, 대비로전, 학사대, 독성각, 응진전, 명부전

무소뿔 2008. 10. 17. 10:50
제목이 쪼매 길군요. 해인사의 본법당 대적광전(大寂光殿)을 가볼 차례입니다. 대적광전은 802년 (애장왕 3년)에 해인사를 창건하면서 순응(順應), 이정(利貞)이 건립하였으며 원래는 비로전(毘盧殿)이라는 2층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1488년(조선 성종 19)에 인수대비, 인혜대비의 지원으로 학조(學祖)가 중창하면서 대적광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처럼 정면 5칸이고 측면은 4칸입니다. 공포가 기둥에만 있지 않고 기둥 사이에도 있으니 주심포 방식이 아니고 다포양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에 현대식으로 지은 당간지주도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에 대해서는 나중에 공부하기로 하지요.

해인사 대적광전(海印寺大寂光殿)

대적광전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 돌 이름을 아십니까? 보통 서원의 대강당 앞과 사찰의 대법당 앞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밤에 관솔불을 피워 불을 밝히던 곳이고, 특히 여름에는 연기를 내게 하여 모기 같은 날것들을 멀리하는 데도 쓰였다고 합니다. 정료석(庭燎石), 광명대(光明臺), 노주석(爐柱石)이라 하며 우리말로는 불우리라고 한답니다. 흠... 이런 거 알고 있는 사람 별로 없으니 외워 두시길... 


대적광전 오르는 계단과 소맷돌. 소맷돌은요, 돌계단의 난간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잘생긴 용 두 마리가 오르는 승속들을 지켜줄 것입니다.

대적광전 왼쪽에서 본 모습.

대적광전 왼쪽에는 대비로전(大毘盧殿)이 새로 지어져 있습니다. 그 설명을 한 번 보시지요.

대비로전(大毘盧殿)

대비로전에는 약 1200년 전 (서기 9세기, 통일신라 후기) 해인사 창건시대에 조성한 두 분의 비로자나 부처님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두 분 부처님은 향나무로 조성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으로 확인되었다.

불상 내부에 쓰여진 묵서에 의하면 서기 883년 신라의 진성여왕과 김위홍(대각간 벼슬을 했으며 사후 혜성대왕으로 추존됨)이 사랑과 영생의 염원을 담아 두 분의 부처님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처님의 이름인 "비로자나"란 인도 범어로서 "태양" 또는 "광명"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불교에서 모든 부처님의 근원으로 존중하고 있다.

부처님의 자태에서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쥐고 있는데 이는 비로자나불 특유의 손모양(手印 mudra)으로서 중생과 부처, 깨달음과 번뇌, 너와 나 등의 대립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통합됨을 뜻한다.

대비로전은 국가적으로 소중히 보존해야 할 두 분 비로자나 부처님을 봉안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한 조치로 국가지원이 이루어지고 신도들의 정성이 모아져 2007년 11월 낙성한 법답이다.

이 시대 최고의 문화재를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건물 부재 일체를 국내 적송을 사용하여 완성했다.


대비로전 내부 모습. 안 들어가볼 수 없지요?

두 분의 비로자나 부처님이 앉아 계십니다. 위 설명에도 있듯이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고, 이 모습이 비로자나 부처님의 특징이지요.
 왼쪽 비로자나 부처님 옆에는 국운이 융창하고 남북 통일 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국운융창 남북통일 원성취; 國運隆昌南北統一願成就)고 써있고,
 오른쪽 비로자나 부처님 옆에는  십만삼세일겁삼보자존전(十萬三世一劫三寶慈尊前)이라는 염원이 써있습니다.
흠... 봉황문 옆에서 해인 잡지 하나 들고 가길 잘 했습니다. 대비로전 우리의 염원을 받아 적을 종이로 딱이었거든요.

삼성 중의 한 분 나반존자를 모시는 독성각( 獨聖閣)입니다. 삼성을 이해하는 의견이 조금씩 다르지요. 한편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이 분이 산신령)을 이르기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출산을 주관하는 산신(産神)이 음운 변화가 일어나 삼신(할매)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불교에서는 북두칠성을 모시던 도교의 전통에 일곱 여래를 모시는 칠성각, 혼자서 스승(석가모니) 없이 자기 힘으로 연기의 원리를 깨우쳤으며 말세 중생에 복을 내린다는 나반존자를 모시는 독성각, 그리소 산신령 할아버지(앞서 말했듯이 단군할아버지)를 모시는 산신각을 두고 우리 토착신앙과 타협을 했는데, 정식 법당이 아니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으로 한 단계 격을 낮춰 모시고 있습니다. 절을 찾는 속인들 상당수는 이 각에서 기도를 많이 하신다고 합니다.

칠성각이나 독성각, 산신각에서는 불상이 아니라 이렇게 그림을 모십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 215호 학사대(學士臺) 전나무입니다.

이 전나무는 높이 약 30m, 둘레 5.1m 쯤 되는 수령이 1,000년 이상 된 고목이다. 나무의 줄기가 지상 10m 높이에서 두 개로 벌어져 있으며, 나뭇가지가 아래로 향해 뻗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곳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에 은거할 때 찾았던 곳이다. 학사대라는 이름은 고운 선생이 헌강왕 때 29세의 나이로 한림학사 벼슬을 하였는데 그 벼슬 이름을 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말년에 제자들 앞에서 이곳에 지팡이를 꽂으며 "내가 살아 있다면 이 지팡이도 또한 살아 있을 것이니 학문에 열중하라."는유언을 남기고 지금의 홍제암 뒤 진대밭골로 유유히 홀로 들어가신 전설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전나무를 일러 고운 선생의 "지팡이 나무"라고 불리운다.


응진전. 나한전과 함께 부처님을 모시지만 제자들의 신앙세계를 모시는 곳.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대적광전 법당들을 둘러 보았으니 대망의 장경판전을 볼 차례입니다. 그런데, 어쩌나... 아직 물을 열지 않았답니다. 9시부터 문을 연다는데, 1시간이나 남았어요. 서둘러 안동을 가야 하는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