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해인사 2 - 봉황문 지나 해탈문 앞까지
무소뿔
2008. 10. 14. 22:15
부처의 세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주문을 지나 고사목(枯死木) 옆 노스님을 지나니 해인사의 천왕문인 봉황문의 해인총림(海印叢林) 현판 글씨가 뚜렷이 다가옵니다.
해인사봉황문(海印寺鳳凰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4호)
봉황문은 해인사 입구의 삼문(三門) 중 첫째문인 일주문에서 80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문으로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봉안되어 있으므로 천왕문으로도 불리며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한다.
문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1717년(숙종 43)에 중수하였고 1761년(영조 37)에 재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1817년(순조 17) 화재 때 전소되고, 1821년(순조 21)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봉황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익공계 단층 맞배지붕의 5량구조 건물이다. 1838년 색채의 훼손이 심한 문수·보현보살상과 함께 가야(伽倻)·제파(堤婆) 등 사위(四位) 탱화를 새로 조성하여 봉안하였으며, 1932년 화백 지송파(池松坡)가 사천왕탱화를 조성하여 이듬해 점안하였다.
국사단(局司壇)
국사단은 가야산의 토지가람신(伽藍神)인 정견모주(正見母主)를 모신 전각으로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하는 자비로운 정견모주께 기도하는 곳이다.
정견모주(正見母主)란 "깨달음의 어머님"이라는 뜻인데, 기록에 의하면 정견모주의 큰아들은 대가야국(고령가야)을, 작은아들은 금관가야국(김해가야)을 창업하였다고 전한다.
가야산은 우리나라 10승지의 하나요, 조선8경의 하나로 불리는 신령스러운 산으로서 고승 순응(順應) 스님게서 서기 802년(통일신라 애장왕 3년) 해인사를 창건하심으로서 더욱 거룩한 성지가 되었다.
특히 가야산은 중국에까지도 널리 알려진 명소인데 순응 스님께서 젊은 시절 중국에 구법 유학을 갔을 때 당시로부터 큰 절이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한다. (지공증점지 誌公曾点地)
국사단의 최초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55년, 1899년, 1961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으며 현 건물은 2007년 전면 해제 복원되었다.
-법보종찰 해인사
자 이제 해탈문으로 들어가야지요.